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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만든 아름다운 애도 -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본문

리뷰

음식으로 만든 아름다운 애도 -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끄적끄적끄으적 2023. 3. 27. 17:22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출판 [사진=예스24 홈페이지]

 

한국인은 헤어지면서 밥 이야기를 한다. “언제 밥 한번 먹자.” 과연 얼마나 지켜졌는지 알 수 없는 말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시간 나면 밥을 먹자고 말한다. 이 인사말 속 ‘밥’은 단순히 밥 한 그릇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밥을 먹기 위해 얼굴을 보고 만나는, 사회적 행위를 의미한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 음식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문화가 되고 추억이 된다.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는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엄마를 음식으로 추억하는 이야기다. 에세이는 한국 식품을 판매하는 미국의 H마트에서 떠난 엄마의 흔적을 더듬으며 슬퍼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어린 시절 한국 문화를 경험한 기억을 설명하는 초반부는 독자를 웃음 짓게 한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산낙지를 먹는 장면은 한국 독자에게 친숙하다. 슈퍼마켓에서 사촌오빠와 “부드러운 멜론맛 아이스크림과 단팥 막대 아이스크림이 가득한 냉동고를 바라보”는 모습은 천방지축 뛰어노는 아이들을 생각나게 만든다. 엄마의 암 투병을 다뤄 무거워질 수 있는 책의 분위기를 한국 음식 에피소드로 풀어준다.

 

성장기 이야기를 지나 어머니의 투병 생활이 나오며 분위기는 다시 우울하게 흘러간다. 작가는 엄마가 바라던 안정적인 삶이 아니라 밴드를 하며 가난한 음악가로 살면서 엄마와 갈등을 빚는데, 배경만 미국일 뿐 한국의 가족상을 옮겨 놓은 듯 이질감이 없다. 장래에 대한 의견 차이로 틀어져서 서먹해진 모녀(母女) 사이는 엄마의 암 투병으로 급속도로 달라진다.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성공한 아티스트의 꿈을 꾸었지만 엄마의 병 간호를 위해 어릴 적 살던 오리건주의 작은 도시 유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와 가족의 성심을 다하는 간호에도 엄마의 건강은 나아지지 않는다. 마지막을 직감한 가족은 한국 여행을 선택하지만, 그마저도 병이 급속도로 악화하며 최악으로 치닫는다. 결국 엄마는 암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하고 작가는 깊은 우울함에 빠진다.

 

그를 슬픔과 상실감으로부터 치유한 것은 한국 음식이었다. 작가는 유튜버 망치(Maangchi)의 영상을 보고 된장찌개와 잣죽을 만들어 먹으며 엄마를 떠나보내고 힘든 시기를 이겨낸다. 그렇게 유튜버의 영상으로 만든 한식은 그를 건강하고 행복했던 추억으로 데려간다. 칼국수는 그를 “어느 날 오후 쇼핑을 마치고 명동교자에서 점심을 먹었던 때로 데려다주”고, 프라이드치킨은 “이모와의 생일 파티를 떠올리게” 한다. H마트에서 산 재료로 총각김치와 배추김치를 담가 먹으며 아픔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H마트에서 울다>는 음식을 통한 건강한 애도를 보여준다. 엄마의 암 투병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고통이 책에서 절절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우울함에서 멈추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엄마가 어릴 적 해주던 한국 음식을 하나하나 만들어 먹으면서 추억을 떠올리고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는 모습을 그린다. 미셸 자우너는 음식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기억함으로써 엄마를 잊지 않고 추억하는 애도로 상실감을 극복하는 아름다움을 잘 표현했다.

 

미셸 자우너는 현재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로 왕성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David Lee, 출처=위키피디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apanese_Breakfast_%2841564066115%29.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