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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달리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끄적끄적끄으적 2023. 6. 8. 10:11

 

나는 오늘도 달린다.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다. 소설가와 마라톤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수십 년간 마라톤을 이어오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달리는 의미를 묻는다. 소설가는 책상에 앉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집필에 몰두하는 일이고, 마라톤은 42.195km를 쉴 새 없이 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라톤과 글쓰기는 결이 같다. 오롯이 혼자서 해결하는 일이다. 묵묵히 시간을 들여 끝까지 나아간다. 처음엔 언제 목표에 도달하나 막막하지만, 한 걸음 내딛고 나면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탄력을 받았을 때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도 같다.

 

달리기는 건강을 챙기려고 시작했다. 소설가는 정기적인 일정이 없다. 글 쓰는 일에 전념하다 보니 일상 생활이 불규칙적으로 변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책상에 앉아서 원고를 쓰는 생활을 하게 되자 체력이 떨어지고 체중은 늘었다. 문장 하나를 두고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담배도 지나치게 피웠다. 손가락이 누렇게 변하고, 온몸에서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이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저 운동화만 있으면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기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렸다. 달리기를 하루 세 끼 식사나 수면같이 일상 속에 빠지지 않는 일로 만들었다. 아침 5~6시에 일어나 소설을 쓰고 러닝을 하는 삶을 지금까지도 매일 반복한다.

 

1983년 그리스 아테네의 마라톤 코스 42km를 홀로 달린 이후, 보스턴 마라톤 대회 5번을 포함해 총 20번 이상의 풀코스 마라톤(42.195km)를 완주했다. 몸이 잘 단련됐을 때는 제법 좋은 기록도 남겼지만 내 목표는 기록이 아니다. 끝까지 달리고 나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지 여부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는지 나아지기 위해 꾸준하게 연습했는지가 중요하다..

 

1982년 달리기를 처음 시작해 어느덧 40년이 흘렀다. 오랜 시간 동안 달리기를 그만둘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집필 일정이 빠듯해서, 갑작스레 만날 사람이 생겨서, 등등. 유명 소설가로서 할 일이 많았기에 진작에 그만둘 수도 있었다. 계속 달려야 할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다. 그저 의지에 달린 문제다. 여러 핑계로 둘러대며 달리는 일을 멈춘다면 어쩌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작은 이유를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이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이 달리기의 본질이다.

 

인생의 목표는 마지막 순간 묘비에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고 적을 수 있는 삶이다. 멈추지 않고 뛰어서 시간과 세월을 들여 최종적으로 나름대로 납득하는 어딘가에 도달하고 싶다. 거기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비슷한 곳이라도 닿으려고 한다. 소설도, 달리기도 한 걸음씩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달린다.

 

 

※ 위 기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자료조사를 통해 쓴 가상 1인칭 인터뷰 기사입니다.

 

 

<한국잡지교육원_취재기자24기_김호준>